주 문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이 사건 공소사실은 D 주식회사(이하 ‘D’이라 한다)가 지급한 금전의 소유권이 피해자 ㈜B(변경 후 상호 ‘W 주식회사’, 이하 ‘피해자 회사’라고만 한다)에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2018. 12. 11. 자 업무이행 약정(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고만 한다)은 피고인 개인과 D 사이에 체결된 것이므로, D이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지급한 금전은 피고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피해자 회사는 D에게 양도할 만한 F지구 도시개발사업 관련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피고인과 피해자 회사 또는 그 주주들 사이에 어떠한 위탁관계가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 그럼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2) 양형부당
원심의 형(징역 1년 6월, 벌금 50,000,000원, 징역형의 집행유예 3년 등)은 지나치게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원심이 선고한 위 형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부당하다.
2. 직권판단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본다.
검사는 당심에 이르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아래 ‘제3.의 가.항 중 2항과 3항’ 기재와 같이 추가하는 내용의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하였고, 이 법원이 이를 허가함으로써 그 심판대상이 변경되었으므로 원심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위와 같은 직권파기 사유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 중 공소장변경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이 법원의 판단대상이 되므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
3.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에 관한 판단
가. 당심에서 변경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2. 12. 5.경부터 2014. 5. 2.경까지 피해자인 ㈜B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었고, 그 기간 중에 대전광역시 동구청에 대전 동구 C 일원 144,779㎡에 대하여 도시개발 구역지정 제안을 하여 2013. 11. 22. 대전광역시 동구청으로부터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받았으며, 2018. 12. 25. 다시 ㈜B의 대표이사로 등기된 자이다.
피고인은 2018. 12. 11.경 대전 이하 불상지에서 ㈜B의 전 대표이사인 자신의 이름으로 D의 대표이사 E과 ㈜B가 진행했던 사업인 ‘대전광역시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하여 D이 사업시행자로 지정받는 것을 전제로 도시개발사업의 업무이행 약정을 함에 있어 양도양수금액을 33억 원으로 하고, ㈜B의 주주인 G, H과 H의 부 I로부터 ‘대전광역시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한 개발사업의 권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합니다.’라는 위임장을 별첨한다는 내용을 부기한 ‘업무이행 약정서’를 작성한 다음 같은 날 대전 서구 J에 있는 공증인가 K법무법인에서 채무변제(준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작성하였다.
1. 피고인은 위와 같은 약정에 따라 L으로부터 2019. 1. 11. 1억 원과 2019. 3. 28. 2천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D으로부터 2019. 4. 26. 5천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2019. 5. 22. 1억 5천만 원과 2019. 8. 23. 3억 원을 자신의 아들인 M의 계좌로 각 송금받았다. 피고인은 위와 같이 송금받은 합계 금 6억 2천만 원을 피해자 ㈜B를 위해 업무상 보관하던 중 그 무렵 대전 시내 일원에서 개인적인 용도로 임의 사용하였다.
2. 피고인은 2020. 1. 9.경 밀양시 밀양대로 1993-20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에 위와 같이 작성된 공정증서를 근거로 ‘D’에 대한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 청구하였고, 위 법원으로부터 2020타채10037호, 2020타채10109호 채권압류 및 추심 결정을 받아 2020. 2. 5. ㈜V(‘D’의 변경 상호) 명의 농협은행 계좌(계좌번호 3 생략)에서 9,586만 615원을, 2020. 6. 9. ‘D’ 명의 경남은행 계좌(계좌번호 4 생략) 1억 원과 ㈜V 명의 농협은행 계좌(계좌번호 5 생략)로부터 1억 원을 합한 2억 원의 채권 추심을 하고, 2020. 6. 22.경 밀양지원 공탁소에서 ㈜V이 같은 해 2. 11. 공탁한 1억 원을 출금하고, 2020. 7. 10. ㈜V 명의 국민은행 계좌(계좌번호 6 생략)로부터 1억 원의 채권 추심을 하여 교부받은 합계 금 4억 9,586만 615원을 피해자 ‘㈜B’를 위하여 보관하던 중 그 무렵 사적 용도로 사용하였다.
3. 피고인은 2020. 5. 26. 불상지에서 ‘D’으로부터 받은 용역비 5억 원(양도대금 33억 원 관련)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여 ‘D’으로부터 부가가치세 5,000만 원을 교부받고, 2020. 6. 25. 용역비 2억 9,500만 원에 대한 부가가치세 2,950만 원, 2020. 7. 10. 용역비 2억 원에 대한 부가가치세 2,000만 원 합계 9,950만 원을 자신 명의의 우체국 계좌(계좌번호 2 생략)로 송금받아 피해자 ‘㈜B’를 위하여 보관하던 중 그 무렵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 ㈜B의 재물을 횡령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이 부분 항소이유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계약은 피고인 개인에 대한 용역계약이 아닌 피해자 회사의 F지구 도시개발사업 관련 권리(이하 ‘이 사건 사업권’이라 한다)를 D에게 양도하는 내용의 계약으로 봄이 타당하고, 피고인이 D으로부터 수령한 금원은 주주 G, H(I)의 위임을 받아 이 사건 사업권을 매각하고 받은 대가로서 피해자 회사에게 귀속되어야 할 금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1) 먼저 이 사건 계약의 상대방인 D의 의사를 살펴본다. 당시 D의 대표이사로서 계약에 참여한 E은 수사단계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계약은 D이 피해자 회사의 F지구 도시개발사업 관련 권리를 양수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었고, 사업권 양수대금 33억 원 역시 피해자 회사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피고인이 지정해 준 계좌로 입금하였을 뿐이다. 피고인 개인에게는 33억 원이라는 돈을 줄 이유가 없고, 피고인으로부터 용역을 제공받은 것도 없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계약의 상대방인 D은 피해자 회사의 이 사건 사업권을 양수받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였음이 명백하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계약의 문언을 살펴본다. 이 사건 계약서 상 계약 당사자인 ‘갑’은 ‘주식회사 B 전 대표이사 A’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계약서 제2조, 별첨 서류로 첨부된 주주 G, H, I의 위임장 및 2019. 5. 22. 이 사건 계약을 일부 수정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업무이행각서’ 제1, 2, 3, 6조에 비추어 보면, 위 각 문언은 모두 이 사건 계약이 ‘피해자 회사의 이 사건 사업권을 양수․양도하는 내용의 계약’임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만약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계약이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체결한 단순 용역계약이라면 계약서에 어떠한 이유로 위와 같은 내용의 문언이 들어간 것인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3) N는 피해자 회사가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지구지정 제안을 할 당시 설계용역을 담당한 사람이자 2018. 12.경부터 2021. 12.경까지 피고인과 함께 피해자 회사의 이사로 근무하였던 사람이다. 위 N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체결한 이 사건 계약은 피해자 회사의 이 사건 사업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계약이었고, 피고인이 개인의 자격으로 체결한 용역계약은 전혀 아니다”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4) 피해자 회사의 주주이자 이 사건 고소를 제기한 I가 위임장 작성 경위에 관하여 한 진술은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기는 하다. 그러나 I의 진술을 배제하더라도 위 위임장에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한 개발사업의 권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합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사실, 피해자 회사는 사업시행자 자격을 이미 상실하여 제3자에게 사업권을 처분하는 것 외에는 수익을 낼 방법이 없었던 사실, 위임장 작성 경위에 관한 N의 진술, 이 사건 계약서 및 2019. 5. 22.자 업무이행각서의 문언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볼 때, I는 피고인에게 이 사건 사업권의 처분을 위임하였음이 인정된다.
5) 한편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해자 회사에게는 제3자에게 양도할 만한 권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은 피고인 개인에 대한 용역계약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시개발법 시행규칙 제14조 제4항은 구역제안자를 다른 신청자에 비해 우선하여 시행자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지정 신청을 한 업체는 D과 주식회사 R 두 곳이었는데, 지정권자인 대전 동구청은 “공법상 권리는 사고 팔 수 없으나 사법상 권리 보호 필요성이 있다. B 실소유자 확정 후 권한 양수자를 시행자로 지정함이 타당하다”는 자문을 받은 다음 피해자 회사의 주식반환 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시행자 지정을 보류하였다. 이에 D과 주식회사 R은 동구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피해자 회사의 사업권을 양수받고자 하였고, 주식회사 R 역시 2018. 12. 4.경 피해자 회사의 사업권을 양수하는 약정을 하였던 정황이 확인된다(증거기록 2권 76쪽). 즉, 사업시행자가 지정되기까지 각 당사자들(동구청, D, 주식회사 R 등)은 피해자 회사가 구역지정 제안자로서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권리를 인정하고 거래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피해자 회사는 이 사건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식회사 X과 용역계약을 체결하여 기초조사를 비롯한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진입도로 및 사업부지에 대한 기본토목설계를 시행하였고, 대상 구역 내 토지면적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도시개발구역의 지정 제안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어 구역 지정을 제안하였으며, 실제 위 제안에 따라 도시개발구역 지정이 이뤄졌다. 피해자 회사가 그 과정에서 얻은 용역계약 결과물 혹은 토지소유자의 동의서 등의 성과물은 제3자가 이를 승계하거나 이전받는 경우 위 사업의 진행에 필요한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 내지 대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재산적 가치가 인정된다.
6) 피고인은 2019. 1. 11.부터 2019. 8. 23.까지 이 사건 6억 2,000만 원을 수령한 다음 그 중 6억 원에 대하여 피해자 회사에 현금 수입이 발생한 것으로 전표를 작성, 회계처리 하였고, 같은 날 다시 위 6억 원을 G에 대한 가수금 반제를 위해 지출한 것으로 장부를 작성하였다(증거기록 1권 90쪽, 106쪽 이하). 또한 피고인은 2020. 5. 26. D에게 위 6억 2,000만 원 중 5억 원에 대해 피해자 회사 명의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도 하였다(증거기록 3권 1052쪽 이하). 위와 같은 회계처리, 세금계산서 발행 행위를 보건대, 피고인 스스로도 이 사건 6억 2,000만 원이 피해자 회사 소유의 금원이라고 인식하였음이 인정된다.
7) 2020. 2. 21.자 임시주주총회 의사록(증거기록 1권 88쪽) 의안 내용 부분에는 “의장 A은 F지구사업에 대하여 D과 업무이행약정에 대한 설명을 한 뒤 부득이한 경우에는 사업권 매각이 될 수 있게 약정금액보다 양보하여 약정금액을 조정하기로 하는데 동의를 구하고 승인 가결하기로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피고인은 이 사건 계약의 약정금액이 ‘사업권 매각’의 대가임을 전제로,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이 사건 계약 체결 경위를 설명하고, 약정금액의 조정에 대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구하였음이 확인된다.
8) D이 2020. 2.경 피고인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인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2020가합10199 사건은 2020. 6. 1. 자로 조정이 성립되었고, 위 조정조서에는 “D과 피고인 사이에 체결된 2019. 5. 22. 자 업무이행각서에 따라 D이 피고인에게 지급하여야 할 용역비 채무 원금을 총 24억 원(부가가치세 별도)으로 확정한다.”라는 항목이 기재되어 있어 마치 이 사건 계약의 대금이 ‘용역비’에 해당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위 민사사건은 피고인이 2020. 1.경 이 사건 계약의 공정증서를 이용해 D을 상대로 압류․추심명령을 신청하자 D의 대표이사 E이 이에 대응하고자 피고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당시 소장의 청구원인(증거기록 2권 263쪽)에는 이 사건 계약의 대금이 ‘양도대금’이라는 취지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으나, D 입장에서는 피고인이 신청한 압류를 해제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조정 내용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E은 이 법정에서 “그 때는 조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관건이었고, 돈을 주는 방법, 받는 방법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용역비’라 하는 표현 자체는 그 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라고 진술(E 증인신문 녹취서 13쪽)하기도 하였다.
9) G, O는 이 법정에 출석하여 이 사건 계약이 피고인 개인에 대한 용역계약이라며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러나 G은 피고인으로부터 이 사건 6억 2,000만 원 중 일부를 지급받아 자신의 채무 변제를 위해 사용하였고, 자신의 주식, 채권을 모두 피고인에게 양도하기도 하였는바, 피고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객관성이 떨어져 해당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O는 이 사건 계약 체결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고, 2020. 3.경 D을 인수할 무렵에 사후적으로 이 사건 계약에 대한 설명을 전해 들은 인물에 불과하여 마찬가지로 이 사건 계약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 또한 G, O는 이 사건 계약이 피고인 개인에 대한 용역계약이었다고 진술하면서도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용역을 수행하였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한편 구역지정 단계에서 설계 용역을 담당한 X에게 책정된 용역대금이 11억 원에 해당하고,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D의 사업 양수도대금이 70억 원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용역인지조차 특정되지 않은 피고인 개인에게 용역대금 명목으로 33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다. 당심의 판단
1) 관련 법리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이므로, 횡령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일 것을 요한다(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도3627 판결 등 참조).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재물에 대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지배력이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그 보관이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실상의 관계에 있으면 충분하고 피고인이 반드시 민사상 계약의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 위탁관계는 사용대차·임대차·위임·임치 등의 계약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한하지 않고 사무관리와 같은 법률의 규정, 관습이나 조리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횡령죄의 본질이 위탁받은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인정사실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 및 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피해자 회사의 F지구 도시개발사업 추진
(1) 피해자 회사는 2011. 4. 15. 부동산개발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이다. 피고인은 2012. 12. 5.경부터 2014. 5. 2.경까지 피해자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었고, 2016. 2. 4.까지 AF이, 2018. 12. 25.까지 L이 각 대표이사로 등기되었다가, 2018. 12. 25. 다시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었다(증거기록 제1책 제2권 30쪽 이하).
(2) 피해자 회사는 2012. 1.경부터 대전 동구 C 일원 토지의 전체면적 144,779㎡ 중 사유지 94,270㎡에 관하여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도시개발구역의 지정 제안에 필요한 동의요건을 갖추었다. 피해자 회사는 2012. 7. 23. 대전광역시 동구청에 대전 F지구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제안하였고, 대전광역시장은 2013. 11. 22. 도시개발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수립을 고시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3권 831쪽 이하).
(3) 피해자 회사는 2016. 3. 16. 건설업 폐업신고에 따라 회사의 ‘목적’ 중 토목공사업이 ‘기타 사유’를 이유로 등록말소 처리되었다(증거기록 제5책 제3권 687쪽).
나) 피해자 회사와 AG의 주식양도계약 및 그 해제
(1) 피해자 회사는 2014. 4. 19. AG에게 피해자 회사의 주식, 도시개발사업 사업권 및 자산 일체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당시 피해자 회사의 주주였던 G, H(실질주주 I), AH는 위 계약에 따라 피해자 회사 주식 242,000주를 AG가 지정하는 자에게 각 양도하였다. AG가 위 주식양도계약에 따른 중도금 지급의무를 지체하자, G, H, AH 등은 2016. 6. 27. 위 주식양도계약을 해제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1권 18쪽, 110쪽).
(2) G과 H은 AG를 상대로 피해자 회사 주식의 반환을 구하는 등의 소를 제기하였고, 항소심 법원인 대전고등법원은 2018. 5. 9. ‘위 주식양도계약의 해제에 따라 피해자 회사의 주식이 G 및 H에 당연히 복귀되었다. 피해자 회사의 주식이 G과 H의 소유임을 확인한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으며, 대법원이 2018. 9. 13. AG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대전지방법원 2016가합104986호, 대전고등법원 2017나14022호, 대법원 2018다238810호)(증거기록 제5책 제1권 18쪽 이하).
다) 이 사건 계약 체결 및 업무이행각서 작성
(1) 피고인은 2018. 12. 11.경 피해자 회사의 전 대표이사인 자신의 이름으로 D과 사이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업무이행약정를 작성하여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같은 날 공증인가 K법무법인에서 채무변제(준소비대차)계약공정증서를 작성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1권 76쪽, 83쪽).
(2) 위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에는 ‘G, H, I가 피고인에게 대전광역시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한 개발사업의 권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합니다.’라는 내용의 위임장(이하 ‘이 사건 위임장’이라 한다)이 첨부되어 있다(증거기록 제5책 제1권 15쪽).
(3) 피고인, 피해자 회사, D 및 L은 2019. 5. 22. 이 사건 계약을 일부 수정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의 ‘업무이행각서’를 작성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1권 151쪽).
(4) 피고인은 L으로부터 2019. 1. 11. 1억 원과 2019. 3. 28. 2천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D으로부터 2019. 4. 26. 5천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2019. 5. 22. 1억 5천만 원과 2019. 8. 23. 3억 원을 피고인의 아들인 M의 계좌로 각 송금받았다(증거기록 제5책 제1권 63쪽, 제5책 제3권 409, 466쪽).
라) D의 F지구 도시개발사업 시행자 지정
(1) 대전광역시 동구청에 대하여, D은 2016. 11. 18., 주식회사 R은 2016. 11. 21., 각 자신을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로 지정해달라는 취지의 시행자지정 신청을 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3권 820, 821쪽).
(2) 대전광역시 동구청은 2019. 6. 24. ‘주식회사 R은 기간 내 민원문서를 보완하지 아니하여 주식회사 R이 제출한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 인가 신청 서류를 반려하고, D은 시행자 지정요건에 적합하므로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지정하고자 함’이라는 내용의 내부 검토를 거쳐, D을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지정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3권 397쪽, 제5책 제5권 91쪽).
마. 피고인과 D의 관련 소송 경과
(1) D은 2020. 2. 14. 피고인을 상대로 이 사건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2020가합10199호), 위 소송에서 피고인과 D 사이에 2020. 6. 1. “D과 피고인 사이에 체결된 2019. 5. 22. 자 업무이행각서에 따라 D이 피고인에게 지급하여야 할 용역비 채무원금을 총 24억 원(부가가치세 별도)으로 확정한다.”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되었다(증거기록 제5책 제2권 260쪽). (2) 피고인은 2022. 1. 10. 피고인의 D에 대한 2019. 5. 22. 자 업무이행각서에 따른 용역비 채권을 피보전채권으로 하여 D과 주식회사 AI 사이에 체결된 부동산 매매계약의 취소를 구하는 사해행위취소의 소를 제기하였고(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2022가합10056호), 위 소송에서 주식회사 AI은 위 용역비 채권의 채권자는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 회사 또는 그 주주들이므로 피고인의 D에 대한 피보전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나, 위 법원은 2022. 11. 10. 주식회사 AI의 주장을 배척하고 피고인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은 주식회사 AI의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2024. 8. 16. 확정되었다[부산고등법원(창원) 2022나14496호, 대법원 2024다254707호](피고인이 제출한 증 제3, 4호증).
3) 구체적 판단
가) 이 사건 계약의 당사자 확정
(1)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그 계약에 관여한 당사자의 의사해석의 문제에 해당한다. 의사표시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으로서,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 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는 그 서면에 사용된 문구에 구애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내심적 의사의 여하에 관계없이 그 서면의 기재 내용에 의하여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 의미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며, 이 경우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9다92487 판결 등 참조).
(2) 위 법리에 비추어 살피건대, 앞서 본 인정사실 및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은 피고인 개인과 D을 당사자로 하여 체결된 계약으로 봄이 타당하다.
①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에 기재된 당사자는 피해자 회사나 그 주주가 아닌 피고인임이 명백하고, 이 사건 계약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작성된 공정증서 역시 피고인이 그 채권자로 기재되어 있는바, 이 사건 계약의 처분문서상 계약당사자가 피고인임은 문언상 분명하다. 2019. 5. 22. 자 업무이행각서에 피해자 회사가 ‘갑-1’로 추가된 사실은 인정되나, 2019. 5. 22.경에는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의 대표이사였음을 고려하면 이는 오히려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에서는 피해자 회사가 당사자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사정이고(그 당시 B 대표인 L이 입회했는데, 만약 계약당사자가 법인이라면 법인 대표인 L이 당사자가 되었을 것이다), 위 2019. 5. 22. 자 업무이행각서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은 여전히 이 사건 계약의 당사자로서 양도금액 33억 원을 지급받을 권리(제1조)를 가진다.
② 이 사건 계약의 상대방인 D은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를 작성할 당시 피고인이 업무이행약정서에 기재된 바와 같이 ‘피해자 회사의 전 대표이사’일 뿐 피해자 회사의 대표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약정금 역시 피해자 회사 명의 계좌가 아닌 피고인 또는 피고인 자녀 명의 계좌로 지급하였다.
당시 D의 대표이사였던 E은 원심 법정에서 “이 사건 계약은 피고인 개인이 아니라 피해자 회사와 체결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진술하면서도(증인 E에 대한 증인신문녹취서 14쪽), “L이 피고인과 합의가 안 되면 F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인이 F지구 도시개발사업은 실질적으로 자기가 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하여 일단 계약 당사자는 피고인으로 되어 있지만, F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한 명의는 피해자 회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자 회사 주주들의 위임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취지로도 진술한바(증인 E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5, 6, 7쪽),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E 역시 이 사건 계약의 당사자를 피고인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D은 2020. 2. 14. 피해자 회사가 아닌 피고인 개인을 상대로 이 사건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위 소송에서 D이 피고인에게 지급하여야 할 채무 원금을 총 24억 원을 확정하는 내용의 조정까지 이루어 졌는바, 조정조서는 재판상 화해조서와 같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어 당사자 사이에 기판력이 생기는 것을 고려하면, D이 이 사건 계약을 피해자 회사와 체결하였다고 인식하면서도 오로지 피고인이 신청한 압류를 해제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조정 내용에 합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의 상대방인 D 역시 계약의 당사자를 피해자 회사가 아닌 피고인으로 이해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③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에 첨부된 이 사건 위임장에는 피위임자가 ’피고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한 개발사업의 권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합니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 주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수임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이름으로 즉, 자신이 당사자로서 위임인을 위해 필요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점, ㉯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피해자 회사는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가 아닌 제안자일 뿐이어서 당사자 간 양도·양수 계약으로 이전될 수 있는 성질의 구체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D으로서는 반드시 피해자 회사를 당사자로 하여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된 소위 ‘사업권’을 승계 받는 계약을 체결하여야만 하였던 것은 아닌 점, ㉰ 피해자 회사의 자산을 그 주주 일부의 위임에 의해 양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점, ㉱ 주주이자 위임장 작성자인 G은 원심 법정에 출석하여 이 사건 계약이 피고인 개인에 대한 용역계약이라며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에 위 위임장이 첨부되어 있다고 하여 계약당사자를 달리 볼 것이 아니다.
나) 재물의 타인성 및 위탁신임관계의 존재 여부
(1)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계약의 당사자는 피고인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에 따라 D으로부터 수령한 금전은 피고인에게 귀속되는 것이고, 위 금전의 수령과 동시에 즉시 피해자 회사의 소유로 되었다거나 피고인이 그 보관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2)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D으로부터 수령한 금전은 F지구 도시개발사업 관련 권리를 매각하고 받은 대가로서 피해자 회사에게 귀속된 것이거나 피고인이 그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
(가) 도시개발법 시행규칙 제14조 제4항은 “지정권자는 법 제11조 제5항에 따라 같은 조 제1항 제2호부터 제11호까지의 규정에 해당하는 자가 도시개발구역의 지정을 제안한 경우에는 그 제안자를 우선하여 시행자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구역제안자를 다른 신청자에 비해 우선하여 시행자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 그런데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알 수 있다.
① 대전광역시 동구청장은 2023. 9. 15.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하여 ‘피해자 회사는 위 도시개발사업의 구역지정 제안자로서 우선 지정될 수 있었으나 요건 미충족으로 시행자 자격이 미달되었음. 사업시행자 지정은 도시개발법 제11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8조에 따른 요건 충족 시 가능한 사항으로, 구역지정 제안자인 피해자 회사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아님. 업무이행약정서 및 업무이행각서 등 사인들 간의 합의(계약)와 시행자 지정은 무관함’이라는 내용으로 회신하였다(원심 법원의 대전광역시 동구청장에 대한 사실조회회신결과).
② 피해자 회사는 2016. 3. 16. 건설업 폐업신고에 따라 토목공사업 등록말소 처리가 되어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피해자 회사의 주주인 G과 H(이하 ‘구주주 측’이라 한다)은 AG와 체결한 주식양도계약의 해제를 다투면서 주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상태였고, AG 측이 L을 피해자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하였으며, L이 D에게 F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제안하여 D이 2016. 11. 18.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을 하였다. 한편, 구주주 측에서는 주식회사 R을 통하여 2016. 11. 21.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을 하였다(증인 N에 대한 원심 증인신문녹취서 제4쪽).
③ 대전광역시 동구청은 “공법상 권리는 사고 팔 수 없으나, 사법상 권리 보호 필요성은 있다. 피해자 회사 실소유자 확정 후 (소송 완료 후) 권한 양수자를 시행자로 지정함이 타당하다.”는 내용의 고문변호사 자문을 받고, 위 주식반환청구의 소 판결 시까지 시행자 지정을 보류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5권 168쪽). 구주주 측이 AG를 상대로 제기한 주식반환청구의 소에서 구주주 측의 승소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대전광역시 동구청에서는 ‘원활한 F지구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시행자 합의 지정이 필요하고, 시행자 지정 요청을 한 양측 당사자가 합의기간 연장을 요청하고 있으므로, 주식반환청구의 소 확정판결에 의한 피해자 회사의 법인등기부등본 정리 및 피해자 회사의 입장 표명 시까지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 지정을 보류함이 타당함’이라는 내용의 내부 검토 의견이 보고되기도 하였다(증거기록 제5책 제5권 132쪽). 즉, 대전광역시 동구청은 사업시행자 지정을 신청한 D과 주식회사 R 사이의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이고, 구주주 측이 다른 회사와 체결한 사업권양수도 업무이행 약정이 무산되는 등의 사정이 발생함에 따라, 피고인, N, L 등 관련자들 사이에서 D이 F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증인 N에 대한 원심 증인신문녹취서 4쪽, 2022. 12. 23. 자 고소대리인 의견서 212쪽 참고).
④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피해자 회사는 F지구 도시개발사업 제안자의 지위에 있을 뿐이고, F지구 도시개발사업 사업시행자 지정과 관련하여 양도·양수 계약으로 이전될 수 있는 법률상 실체적·구체적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업시행자가 지정되기 전까지 대전광역시 동구청, D 등 당사자들은 피해자 회사가 구역 지정 제안자로서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권리를 인정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 회사가 도시개발구역 지정 제안 과정에서 주식회사 X과 용역계약을 체결하여 얻은 기초조사를 비롯한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진입도로 및 사업부지에 대한 기본토목설계 등 용역계약 결과 혹은 대상 구역 내 토지면적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의 동의서 등의 성과물은 제3자가 이를 승계하거나 이전받는 경우 위 사업의 진행에 필요한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 내지 대체할 수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피해자 회사가 가지는 사실상의 재산적 가치는 인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 위와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D은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한 구체적·실체적 권리의 인수나 ‘피해자 회사로부터 F지구 도시개발사업 사업권을 양수하였다’는 내용의 처분문서가 필요하였던 것이 아니라, F지구 도시개발사업 사업시행자 지정을 받을 수 있도록 피해자 회사와 관련된 유·무형의 가치를 가진 결과물을 승계 받는 절차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 제4조 1)의 ①항에서는 피고인의 의무로 ‘본 사업의 사업시행자 지정 및 사업진행에 필요한 제반업무 및 본 사업의 인허가와 관련한 대관업무 등 사업진행 관련하여 D에게 적극 협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반드시 피해자 회사를 당사자로 하거나 피해자 회사가 소유하는 구체적인 권리 내지 자산을 목적물로 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피해자 회사의 전 대표이사이자 곧바로 다시 대표이사가 될 예정이었던 피고인이 개인의 지위에서도 제공할 수 있는 내용의 용역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이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 지정 및 사업진행에 필요한 제반업무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하여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를 위하여 대신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약정금을 수령하였다거나 피고인이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이 곧바로 피해자 회사에게 귀속된다고 볼 수 없다.
(3) 나아가 이 사건 위임장에 관하여 살피건대, 일부 주주들의 위임에 의하여 피해자 회사의 권리 내지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사건 위임장을 첨부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과 피해자 회사 사이에 횡령죄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위탁신임관계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피해자 회사의 주주들이 대표이사가 아닌 피고인을 피위임자로 하여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한 개발사업의 권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합니다.’라는 내용의 위 임장을 작성함으로써 피고인 개인이 F지구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하여 피해자 회사가 창출한 유·무형의 가치를 D에게 승계하는 내용의 용역을 수행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 체결 후인 2020. 2. 21. 피해자 회사 대표이사로서 개최한 임시주주총회 의사록의 의안 내용 부분에 “의장 A은 F지구사업에 대하여 D과 업무이행약정에 대한 설명을 한 뒤 부득이한 경우에는 사업권 매각이 될 수 있게 약정금액보다 양보하여 약정금액을 조정하기로 하는데 동의를 구하고 승인 가결하기로 하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이 사건 위임장과 동일한 취지에서 피해자 회사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증거기록 제5책 제1권 88쪽).
(4) 이 사건 계약은 D이 F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지정받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는데(2018. 12. 11. 자 업무이행약정서 제1조), D이 2019. 6. 24.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용역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거나 피고인이 수행한 구체적인 용역의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뿐이고,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인이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이나 그 보관자의 지위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5)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횡령금액은, 피해자 회사 또는 그 주주와 피고인 사이의 약정 이행이나 정산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피고인에게 귀속되는 피고인 소유의 재물이지 피해자 회사 소유의 재물로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보관자의 지위가 인정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금원이 피해자 회사의 재물이라거나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를 위해 보관자의 지위에 있을 전제로 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범죄로서 성립하지 아니한다.
4) 소결론
따라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원심은 당심에서 추가되기 전의 공소사실 부분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으므로, 원심은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위에서 본 직권 파기사유가 있고, 피고인의 위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도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과 검사의 각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 제6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이유]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제3.의 가.항’ 기재와 같은데, 위 ‘제3.의 다.항’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지 아니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