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문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정신적 장애를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위계를 사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2. 직권판단
검사의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본다.
검사는 당심에서 아래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하는데 사용한 위계의 내용 등을 추가하는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하였고, 이 법원이 이를 허가함으로써 심판대상이 변경되었으므로, 원심판결은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은 여전히 이 법원의 심판대상이 되므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
『피고인은 2019. 1.경 인터넷 게임 사이트인 ‘B’에서 피해자 C(가명, 여, 34세)을 알게 되었고, 피해자로부터 게임 도중 ‘장애가 있어 경제적으로 힘들다. 생활비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피해자에게 ‘휴대전화기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말을 하는 등으로 피해자를 유인하기로 하였다.
피고인은 2019. 1. 15. 09:50경 피해자에게 위와 같이 ‘휴대전화기를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 그 돈으로 생활비를 하면 된다. 도와주겠다.’라고 말을 하여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41에 있는 ‘영등포 우체국’ 앞으로 피해자를 불러내어 만났다.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으로 말투가 어눌하고 겉으로 보기에도 정상인과 달리 어리숙하게 행동하여 장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피해자가 정상인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타인의 가벼운 지시나 요구에도 무기력하게 순응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은 바로 그 자리에서 피해자를 피고인의 차량에 태워 서울 강서구 D 모텔로 데리고 가서는 마치 피해자가 피고인과 같이 모텔 호실에 입실하지 않으면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피해자에게 모텔에 같이 입실할 것과 모텔비용까지 지불하도록 요구하였다.
피해자의 지적장애로 인하여 피해자는 피고인의 위와 같은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였고, 결국 피해자가 모텔비용을 지불하자, 피고인은 피해자와 같이 위 모텔 E호에 입실하였다.
그 곳에서 당시 피해자가 잠을 못잔 나머지 피곤하여 상의 중 점퍼를 벗고 그 곳 침대에 눕자, 피고인은 피해자가 피고인과 성관계를 하여야만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손으로 피해자의 나머지 옷을 다 벗긴 다음, 피해자의 음부에 피고인의 성기를 삽입하여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위계로써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3.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에 관한 판단
가.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제출된 증거에 의하여 그 판시와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인정한 다음, 이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할 당시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고, 나아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어떤 위계나 위력을 사용하였는지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나. 이 법원의 판단
1) 관련법리
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입증이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설령 유죄의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5도767 판결 등 참조).
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강간의 죄 또는 강제추행의 죄를 범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그러한 사람을 간음한 사람을 처벌하는데, 위 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도 범행 당시 피해자에게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6도4404, 2016전도49(병합) 판결 참조].
여기에서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할 당시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간음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위계적 언동을 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진 탓에 피고인과 성관계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없다.
가) 피해자는 2005. 8. 13.경(당시 만 19세) 지적장애 3급(지능지수 50~70) 판정을 받았고, 이후 불안, 우울증 등의 문제로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며 추가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중복장애인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중복장애 합산에 따라 2급 장애인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피해자의 장애 정도에 대한 판단은 지적장애 3급, 정신장애 3급을 기준으로 각각 나누어 이해하여야 한다.
나)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자신의 장애를 알렸다는 점을 확신할 만한 증거는 제출되어 있지 않다. 피고인은 인터넷 게임을 통하여 피해자를 알게 되었고,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어 문자나 전화로 하루 이틀 정도 전화를 주고받은 후 이 사건 당일인 2019. 1. 15. 처음 만나게 된 사이인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피해자가 피고인을 만나기 전 피고인에게 ‘장애가 있다’는 말을 하였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
즉, 피해자는 2019. 1. 20.경 K센터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피고인에게 나이는 34살이고, 고향은 김천이며, 회사를 다녔다고 소개했다.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피고인에게 장애가 있다고 이야기한 사실이 있는지’ 묻는 조사자의 질문에 ‘아니요. 안했어요.’라고 답변하였다. 비록 피해자가 당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을 만나기 전에 문자로 피고인에게 장애인이라고 말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는 하였으나, 피해자의 당심 법정에서의 진술은 이 사건 당일로부터 약 2년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건 발생 직후 K센터에서 이루어진 진술보다 그 신빙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다) 피해자는 피고인을 만났을 때에는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수사기관 및 당심 법정에서 진술에 임하는 피해자의 태도나 진술 내용 등을 보면 피해자는 질문의 요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경험한 바를 기억에 따라 진술할 수 있으며, 잘못 진술하거나 타인이 잘못 이해한 부분을 정정하여 이야기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피해자를 대면한 진술조력인 L과 진술분석전문가 M는, 피해자의 외적 용모나 의상 상태에서 피해자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고 인식할 만한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진술조력인 L은 원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장애인인 피해자의 진술조력, 진술분석 업무를 수행했던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장애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조금 가벼운 편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하여 ‘경계선급이라고 해서 지적장애 범주 중에서 상당히 상위에 있는 편이었다.’라고 증언하기도 하였고, 진술분석전문가 M도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라고 진술하여 이에 부합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피해자의 장애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점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라) 피고인은 피해자와 모텔에서 성관계를 한 이후, 피해자를 데리고 인근의 휴대전화 대리점으로 가서 피해자 명의로 기기변경 방식의 휴대전화 무선서비스 가입계약((전화번호 1 생략), 이하 ‘제1가입계약’이라한다)을 체결하게 하였는데, 피해자는 남편과 함께 커플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할인 혜택을 받고 있지 않았고, 제1가입계약을 위해 휴대전화 대리점에 신분증을 제공할 때에도 장애인 복지카드가 아닌 일반 신분증을 주었으며, 제1가입계약서에는 장애복지 할인이 신청되어 있지 않다.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제1가입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도 피해자의 장애 여부를 몰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마) 검사가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 ’위계‘의 내용으로 특정한 것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휴대전화기를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을 하여 피해자를 유인한 다음, 피해자가 피고인과 성관계를 하여야만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듯한 태도를 보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K센터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기변‘이 뭔지 몰랐다며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으로부터 속았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적으로 하였을 뿐, 성관계와 관련하여 피고인으로부터 속았다는 진술은 한 적이 없다. 나아가 피해자는 당심 법정에서 ’ 혹시 피고인이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 묻는 검사의 질문에 대하여 ‘기억이 안 난다.’라고 대답하였고, ‘피고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나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대하여도 ‘없다.’라고 대답하였으며, ‘피고인이 성관계를 해야만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태도를 보인 적이 있는지’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답하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황에 관하여는 진술하지 않았다.
바) 오히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당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당시 피고인이 자신을 폭행하는 등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위협적인 언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고인이 무서워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피고인이 무섭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무서웠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진술을 반복할 뿐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인 정황에 대한 진술을 하지 못하였다. 위와 같은 피해자의 진술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해자가 당시 피고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하면 폭행할까봐 무서워하였을지는 몰라도, 피고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돈을 벌게 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성관계에 응하게 되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하여 간음의 목적으로 간음행위의 동기 또는 이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관련하여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는 위계적인 언동을 하였다거나,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피고인의 위와 같은 언동에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동기에 관하여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졌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4. 결론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없으나 원심판결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직권파기사유가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공소사실 및 판단
이 사건 공소사실은 앞서 제2항에서 본 것과 같은바, 제3의 나.항에서 본 것과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하지 않는다.